충청남도부여교육지원청 교육지원과장 신경희

▲ 충청남도 부여교육지원청 교육지원과장 신경희
신록의 성숙함이 돋보이고 보리가 익어가는 6월. 넝쿨장미들이 햇살아래 자꾸만 말을 건네 온다. 살살 불어오는 바람에 담채화 느낌의 맑은 시가 생각나는 아침. 참기름을 발라 놓은 듯 반짝이는 잎새 위로 햇살이 분가루처럼 흩날린다. 빈 들판은 모내기로 연두빛깔 가녀린 잎새들이 하나 둘씩 꽂혀 가고, 면역된 시간이 상처로 얼룩진 봄날을 빠져나간다. 열린 창문으로 알아서 들고 나는 착한 바람처럼, 숨 쉴 때마다 일일이 고맙다고 말하지 않아도 되는 꼭 필요한 산소처럼 그렇게 살 일이다.

가끔 욕심이 많아 보인다는 얘기를 듣는다. 그 때마다 나는 꼭 그런 것 같지 않은데 하면서도 한 번씩 거울을 들여다보게 된다. 내 얼굴 어디쯤에 욕심이 매달려 있는 걸까? 주어진 삶에서 최대한 긍정적으로 생각하며 순리대로 살아가려 애써 노력하고 있는 것 같은데. 웬만하면 땅을 더 밟으며 자연과 함께 하려는 욕심을 부려왔던 건 틀림없는 사실이다.

끝이 없는 게 사람의 욕심이라고들 한다. 가끔 그 욕심이 너무 지나쳐서 오히려 낭패를 보는 경우도 있다. 이치에 맞지 않는 지나친 욕심은 자신뿐 아니라 주변을 곤경에 빠뜨릴 수 있다. 욕심은 불만을 낳고 불만은 불행으로 안내하는 지름길이다. 사실 누구라도 욕심 없는 삶을 지탱하기란 불가능하다. 문제는 늘 분수에 넘치는 과욕이며 사람의 도리를 벗어난 욕심에 있는 것이다. 내게 득이면 된다는 자기중심적 이기주의에 몰입하고 집착한 결과로 빚어진 사건 사고들이 그동안 얼마나 많았던가.

오래전 일본을 방문했을 때 일이다. 교토시 청수사안에 오토와라는 폭포에 갔었다. 그곳에서 내려오는 세 갈래의 물줄기. 지혜·사랑·장수를 각각 상징하는 물을 마시면 그 복이 찾아온다고 했다. 단, 세 갈래의 물을 다 마시면 그 욕심 때문에 불운이 따르므로 두 갈래만 선택해서 마셔야 한단다. 살짝 고민하다가 지혜와 사랑의 물줄기를 마셨던 것 기억이 난다. 이왕이면 장수(건강)의 물도 마시고 싶었다. 그곳에 왔던 사람은 누구나 그랬지 않았을까 싶다. 나이 들어 여기저기 곰실곰실 쑤시고 아플 때마다 그 날, 장수의 물줄기를 마시지 못한 것이 솔솔 아쉽다. 지금 같아서는 장수 물줄기를 먼저 마실 것 같다. 이것 또한 욕심이겠지.

욕심과 관련한 톨스토이의 우화가 있다. 한 가난한 농부 얘기다. 이 농부는 평소 귀족들처럼 넓은 땅을 갖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혀 있었다. 어느 날 한 귀족으로부터 솔깃한 제의를 받는다. “여보게 내가 그 소원을 풀어주지. 자네 마음대로 하루 동안 달리면 그 만큼의 땅을 주겠네.” 다음 날 그는 아침 일찍 일어나 신이 나서 죽기 살기로 넓은 들판을 달렸다. 한 발을 내디딜 때마다 그게 자기 땅이라니. 마침내 그는 엄청난 거리를 달린 뒤 출발점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숨을 헐떡이며 되돌아오자 곧 지쳐 쓰러져 죽고 만다. 결국 하루 종일 자기의 땅을 위해 달렸지만 그에게 필요했던 땅은 스스로 묻혀야 할 2평 남짓의 땅 뿐이었다. 욕심이 일을 그르치고 화를 부른 사례다. 그저 웃어넘기기에는 인생의 비애가 느껴진다.

버리고 비우는 일은 결코 소극적인 삶이 아니라 지혜로운 삶의 선택이다. 채우기보다는 욕심에 집착하지 않는 방법을 스스로 찾아가며 사는 것이 훨씬 행복한 삶이라 한다. 사람인지라 아예 욕심 없이 살 수는 없다. 하지만 불필요한 욕심을 걸러낼 줄 아는 삶, 그런 삶을 실천하며 사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가끔은 법정 스님의‘무소유의 행복’을 떠올리며 마음을 비워보려고 한다면, 좀 더 가벼우면서도 풍요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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