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남도 부여교육지원청 교육지원과장 신 경 희

▲ 충청남도 부여교육지원청 교육지원과장 신 경 희
성격이 이상한 건지 곧은 나무보다 굽은 나무를 더 좋아한다. 특별히 옹이진 나무에게는 한층 애틋한 정이 간다. 그 이유는 곡선이 직선보다 더 아름답기도 하지만, 굽었다는 것은 높은 곳만 바라보지 않고 낮은 것을 살피며, 무언가의 아픔을 견디며 열심히 살았다는 증표 같아서다.

살다보면 이래저래 마음 다치는 일이 있다. 그때마다 상처 난 마음을 추스르고 다시 일어서기도 하지만, 때로는 그 상처 안에 오래 머물기도 한다. 때때로 삶의 이유이기도 한 가족에게까지 부주의하고 무의미한 말 한 마디로 깊은 생채기를 내기도 한다. 이런저런 상처의 참을 수 없는 너펄거림. 흐느끼는 마음과 흐르는 눈물을 묶는다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원인이 뭐든 상처는 빨리 치료할수록 좋다.

크고 작은 상처를 받고 상처를 주어 괴로워했던 기억들이 있다. 나이 들수록 괴로움의 강도는 조금씩 무디어지는 것 같다. 어쩌면 아프지만 의연하게 맞서는 힘이 생겨났다는 표현이 더 맞을 성 싶다. 그래도 상처가 옹이 져 아직 고통스런 것들이 있다. 아문 듯 했는데도 수시로 도져 가슴이 후벼지는 것들. 몸에 나는 상처는 시간이 지나면 아물게 마련이지만 마음에 상처는 쉽게 아물지 않고 때로 평생을 가기도 한다. 그것은 가슴에 독(毒)을 차고 사는 일이다.

상처를 잊어버리려 노력 하거나 잊어버린 듯 내버려 두는 것은 좋은 치유 방법이 아니라고 한다. 오히려 상처를 드러내 놓고 극복해야 한다. 상처의 치유는“자존감에 달려있다”고 베르벨 바르테츠키는 말한다.‘상처 받는 것은 슬픈 일이지만 상처 때문에 불행해지는 것은 아니다. 용서하지 않은 자신 때문에 괴로운 것이다. 상처를 긍정하고 잘 치유한다면 오히려 그 상처 때문에 더욱 아름다운 인생을 살 수 있다’고 한다. 에리히 케스트너는‘슬플 때는 거리낌 없이 울어라. 마음을 너무 감시하지 마라! 눈물이 흐르는 대로 슬퍼해도 죽는 일은 없다. 사람을 들었다 놓았다하는 슬픔. 아무 때나 왔다가 아무 때나 사라지는 슬픔, 그러면서 영혼은 차차 순치되는 것이다.’라고 읊었다. 고개를 끄덕이고 싶다. 삶이란 다 그런 것 아니던가.


마음이 상하는 일을 피할 수 있는 사람은 세상에 없다. 다만 상처도 희망이라는 관점의 변화가 필요하다. 상처 속에서 허덕이는 삶이 아니라 보다 긍정적인 자세로 자신을 위한 삶을 집중해야 한다. 왜냐하면 상처는 열등감이 되고 열등감은 수치심과 좌절을 부르기 때문이다. 잊거나 헤어 나오지 못하면 자신감은 물론 자존감마저 잃고 무너지기 십상이다. 그러니 상처로 인한 아픔과 콤플렉스를 세상과 맞서는 강인한 힘으로 바꾸려는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그래야만 상처가 상처로 끝나지 않고 또 다른 모습으로 굳건히 세워 주는 힘이 될 수 있다.

모닝커피가 달달하게 온 몸으로 스며든다. 굳은 것들이 자근자근 풀리고 햇살에 반짝이며 너울너울 피어나는 잎새들의 출렁임이 차오른다. 심장을 빠져나온 두근거림이 자맥질 하는 날은 수심 깊이 숨어 있던 그리움들이 하나 둘 부활한다. 바쁜 일상을 다람쥐 체바퀴 돌리듯 벗어날 수 없는 삶이라지만 때때로 가슴이 말하는 대로 살고 싶어진다. 풀잎은 풀잎대로 바람은 바람대로 축복의 서정시를 쓰는 녹음 의 계절. 그 늠름한 푸르름에 상처받은 영혼을 치유하자. 구김살 없이 찬란하게 쏟아지는 축복의 햇빛으로 마음 속 얼룩지고 우울한 습지를 조곤조곤 말리다 보면 침출된 기억의 아픈 상처들이 삶의 또 다른 에너지로 변환되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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