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남도 부여교육지원청 교육지원과장 신경희

 

▲ 충청남도 부여교육지원청 교육지원과장 신경희
혼절하게 흩날리던 꽃비는 그치고 잔인한 사월이 무심하게 흘러간다. 바람이 시간이 남기고 간 자리마다 슬픔과 부러진 생각들이 절뚝거린다. 햇살도 하얗게 내려와 말이 없다. 세월호 여객선 침몰. 있을 수 없는 대형 참사. 어처구니없는 조치. 수많은 '그랬더라면'이 가슴을 친다. 뉴스를 보는 이도 이렇게 가슴이 아픈데 가족들은 오죽할까. 그나저나 다 키운 아이들 어쩐다지요?

이번 세월호 사고에 어른들은 70%가량 구조됐지만 단원고 학생들은 23%만 구조됐다. '여자와 어린이 먼저'라는 '버큰헤이드호의 전통'은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러한 전통과는 180도 다른‘룰’이 적용된 셈이다. 침몰 사고 후 선장과 선원이 가장 먼저 탈출한 것으로 알려져 비난이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162년 전 버큰헤이드호의 전통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준다.

1852년 영국 해군의 수송선 버큰헤이드호가 남아프리카로 가던 중 케이프타운 66km 전방에서 암초에 부딪쳐 침몰하게 된다. 승객들은 630명이었으나 구명보트는 60명을 태울 수 있는 단 세 척뿐. 180명밖에 구조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사령관 시드니 세튼 대령은 주로 신병들인 모든 병사들을 갑판 위에 모이게 한 뒤 부동자세로 서있게 했다. 이어 여자와 아이들을 3척의 구명보트에 태우게 했다. 여자와 어린이를 태운 3척의 구명보트는 침몰하고 있던 버큰헤이드호를 떠났다. 군인들은 세튼 대령의 명령에 따라 끝까지 움직이지 않고 서 있었다. 사령관 세튼 대령을 포함한 436명이 그대로 수장됐다. 이후로‘여자와 어린이 먼저’라는 전통이 세워졌고, 배의 이름을 따서 '버큰헤이드 호 전통'이라 불리고 있다.

이후 배가 항해 도중 재난을 당하거나 비행기가 불시착을 할 경우 "버큰헤이드 호를 기억하라"는 전통은 세계 어느 나라에서든 탈출과 구조의 불문율이 됐다고 한다. 이 전통은 승객 1,515명을 태운 영국 수송선 엠파이어 윈드러시호가 알제리아 해안 77km 해역을 지나다 보일러가 폭발하는 사고가 발생했을 때도 예외 없이 지켜졌다. 1912년 4월 그 유명한 타이타닉호의 침몰 사고에서도 그 전통을 지켰다. 세월호 역시 버큰헤이드호의 전통을 기억했더라면, 좀 더 체계적인 훈련과 교육이 있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부질없는 아쉬움을 가져본다.


참으로 안타깝고 안개 속처럼 답답하기 그지없는 날들이다. 기다리는 소식은 오지 않는데, 시간은 어김없이 약속을 잘도 지킨다. 다양한 체험학습은 교육적으로 반드시 필요하다는 생각 아래 각종 현장체험학습은 물론, 해외체험까지 거침없이 불사했던 4년 동안의 지난날들이 차라리 아찔하다. 학교경영을 하면서 모든 교육 활동이 무사했던 점. 그것은 참으로 행운이었고 감사한 일이었다는 걸 새삼 느끼게 된다. 최근의 마우나리조트 사고, 이번 진도사고 모두가 지켜야 할 것들을 소홀히 하고 과정을 생략하는 사회전반에 깔려있는 습관처럼 굳어진 관행에서 비롯된 것이다. 사후약방문 식으로 책임 소재를 따지고 안전 불감증을 운운하며 급조된 전시행정으로 그쳐서는 절대 안 될 일이다. 원칙과 기본에 충실한 보다 근본적인 대책이 절실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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