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남도 부여교육지원청 교육지원과장 신경희

▲ 충청남도 부여교육지원청 교육지원과장 신경희
학교에서 교육청으로 일터가 바뀐 지 어느덧 두 달이 다 되어간다. 익숙하지 않은 곳에서 적응해나가는 탓도 있었겠지만, 그걸 빌미로 한동안 책을 손에 쥐질 않았다. 지난 주말, 우연하게 <조선 명문가 독서교육법>이라는 책을 붙잡았다. 조선의 명문가에서 행해진 독서 방법과 독서교육을 담고 있는 책이다. 조선시대의 독서 지존이라 할 수 있는 55명의 독서법과 그들의 숨은 이야기를 흥미롭게 만날 수 있었다. 그중 두 번째 장‘정독인가, 다독인가’에서 만난‘1억1만3,000번을 읽어 내려가다,의 주인공인 김득신이 유독 눈길을 붙잡았다.

평소 책을 제법 읽는다고 자부해 왔던 터이다. 그런데 같은 책을 두 번 이상 읽은 기억은 별로 없다. 내게 특별한 것이 있다면 책을 읽을 때 밑줄을 긋는 습성이 있다. 그래서 가족들은 나를 밑줄 긋는 여자라고 부르곤 한다. 다 읽고 나면 밑줄 그어진 내용들을 마음에 새기듯 노트에 꾹꾹 눌러 적는다. 그렇게 하고 나면 책을 두 번 읽은 것 같아 뿌듯하다. 때때로 노트를 열어 그들과 다시 만나는 기쁨을 누리기도 한다. 이것이 내 독서의 풍경이다.

독서광을 이야기할 때 흔히 나폴레옹을 든다. 그는 전쟁의 영웅이면서 한시도 손에서 책을 놓지 않은 것으로 유명하다. 전쟁 중에도 책을 수레에 싣고 다니면서 휴식을 취할 때마다 책을 읽었다고 한다. 우리 역사 속에도 나폴레옹 빰치는 독서광이 바로 조선시대 김득신이다. 그는 진주성을 지키다가 전사한 김시민 장군의 손자로 많은 책을 읽었다기보다 한 권의 책을 수 만 번씩 읽은 것으로 더 유명하다.

그는 사마천의 사기 중‘백이전’을 특별히 좋아해 1억1만3,000번을 읽었다고 한다. 그 당시에는 10만을 1억으로 계산하였다고 하니 지금으로 따져 봐도 11만3000번을 읽은 셈이다. 또 한유의 <사설>은 13,000번, <악어문>은 14,000, <노자전>은 20,000번, <능허대기>는 25,000번을 읽었다고 하니 그의 독서법에 그저 놀랍기만 하다.‘억만제’는 김득신이 한 책을 선택해서 만 번을 넘지 않으면 글 읽기를 멈추지 않았다는 데서 그의 집(서재)에 붙여진 이름이다.‘억만제’를 생각하다보니 공자(孔子)가 <주역(周易)>을 즐겨 읽어 책의 가죽 끈이 세 번이나 끊어졌다는 위편삼절(韋編三絶)고사 성어까지 더불어 살아 나온다.


독서는 저자와의 대화를 통해 자신의 삶을 성찰하며 지혜를 쌓는 사색의 과정이다. 그러니 그 방법이야 각자의 취향일 수 있을 테고, 읽는 목적에 따라 달리하면 될 것이다. 어떤 시인은‘책을 읽는 건 외로운 영혼이 물방울처럼 떨어지는 나무의 잠을 털면서 다른 생으로 이주해가는 누군가의 울음소리에 눈을 맞추는 일이다. 나와 당신 사이를 불어오는 바람에 생의 한 페이지를 넘기는 일’라 표현하기도 했다.

아름답지 않은 것이 없는 사월이다. 작은 풀잎 하나 작은 꽃잎 하나 모두가 경이롭기 그지없다. 푸지게 화사하던 벚꽃이 이제는 눈처럼 마구 휘날리며 봄 풍경의 극치를 달리고 있다. 조선시대 독서왕 김득신처럼 한권의 책을 만 번 이상 읽을 수야 없겠지만, 이 봄날이 다 가기 전에 우리 모두 마음 끌리는 책 한권 읽어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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