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남도 부여교육지원청 교육지원과장 신경희

▲ 충청남도 부여교육지원청 교육지원과장 신경희
3년 전 이 맘 때였던 것 같다. 대전에서 고등학교 교사를 하는 남동생이 친정집 담벼락에 기대어 피우기 시작한 목련 꽃봉오리 몇 개를 따 주었다. 냉동실에 넣어두었다가 차로 마셔보라 권했다. 5월이면 여린 뽕잎이나 감잎을 따서 차 만드는 것을 연례행사로 치르고 있다. 그런데 목련꽃으로 차를 만든다는 것은 몰랐었다. 허긴 국화차처럼 개나리꽃도 말려 두었다가 차로 마신다니 뭐 그리 놀라울 일도 아니다. 남동생은 봄이면 교정에 피는 목련꽃 봉오리를 따서 선생님들과 차로 만들어 마신단다. “향이 얼마나 그윽한지. 봄이 다 지고 잊혀져갈 즈음 하얀 목련의 꿈을 다시 불러들일 수 있는 너무 좋은 차”라며 낭만적인 자랑을 했다.

그 후 여기저기 찾아보니 목련 차를 만드는 다른 방법들도 있었다. 꽃잎을 일일이 물에 씻어 설탕에 재어 두거나, 꽃잎을 말려두었다가 뜨거운 찻물로 꽃잎과 향을 살려 내는 것이다. 그래도 남동생이 전수해준 방법이 제일로 간단하다. 꽃이 피기 시작할 즈음 꽃봉오리를 따서 하얀 실로 느슨하게 싸매서 냉동실에 넣어두기만 하면 된다. 그리고는 봄을 다시 만나고 싶을 때마다 하나씩 꺼내어 차로 만들어 마시면 된다. 구지 유의할 점이 있다면 만개한 꽃보다는 막 피어나기 시작하는 꽃송이를 선택하면 더 좋다는 것이다. 그것은 생화가 풀어내는 향이 더 그윽하고 진한 이유에서이다. 목련 차는 특히 알레르기성 비염에 좋다고 한다. 한방에서는 목련꽃을 신이(辛夷 )라 하여 비염, 축농증의 치료 약재로 처방한단다. 꽃차는 어느 것이든 오감을 감동시켜 주지만 특별히 목련 차는 아쉽게 스쳐가 버린 봄을 되돌릴 수 있어 그 어떤 차보다 느낌이 다르고 참으로 매력적이다.

작년 여름, 수은주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올라가던 어느 날. 냉동실에서 깊고 푸른 잠에 빠져 있던 목련꽃 한 송이를 꺼냈다. 넓적한 유리그릇에 따뜻한 물을 조금 식혀서 붓고 하얀 실을 조심스레 풀어 낸 다음 꽃봉오리를 넣었다. 거기다가 얼음까지 동동 띄우니 하얀 꽃잎이 천천히 벌어지며 환하고 진한 향을 피워 올렸다. 아주 오래전 영평사 주지스님이 커다란 함지박에 하얗게 피워 올려 내어주던 백련차를 마시던 그 느낌이 그대로 전해져 오는 듯 했다. 매년 목련 꽃봉오리를 냉동실에 고이 모셔두는 이유이기도 하다. 올해는 그 적절한 시기를 놓쳐 버렸다. 지난 일요일 이미 만개해 버린 목련 꽃 몇 개를 따서 꽃잎을 한데 끌어 모아 하얀 실로 감아 꽃봉오리인 냥 냉동실에 고이 모셔 두었다.

갑자기 찾아든 이상기온으로 봄이라기보다는 초여름을 느끼게 하는 날들이 계속되고 있다. 덕분으로 때와 장소의 차별을 지우고 지금 사방이 꽃 천지다. 겨우 내내 내밀히 품어왔던 하얀 꿈을 맘껏 펼쳐 보지도 못한 채 목련이 지고 있다. 어떤 시인은‘목련이 일찍 피는 까닭은 세상을 몰랐기 때문이고, 목련이 쉬 지는 까닭은 절망했기 때문이요. 다음 봄에 다시 피는 까닭은 혹시나 하는 소망 때문이다.’라고 했다. 하늘이 꽉 차게 순백으로 물들였던 꽃잎들이 갈 빛으로 변색되어 떨어지는 것을 보면, 삶을 채 살아보기도 전에 허무하게 끝나버릴지 모를 인생을 읽는 것 같아 서러워 눈물이 난다.

젊어서“나는 아름다움을 유지할 수 있을 때까지만 살래. 더 늙어지면 추할 거 같아서"란 소리를 하곤 했다. 아름다운 꽃의 생명주기를 닮고 싶은 열망이고, 귀엽기 짝이 없는 언사이다. 하지만 그 바람과는 상관없이 늙어가고 있다.‘그대 떠난 봄처럼 다시 목련은 피어나고 아픈 가슴 빈자리엔 하얀 목련이 진다’노랫말이 생각나는 오늘, 이 투명한 날씨는 누구에게 드리는 사랑인가, 누구에게 목매단 그리움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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