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남도교육지원청 교육지원과장 신경희

▲ 충청남도교육지원청 교육지원과장 신경희
컴퓨터 모니터만 뚫어지게 바라보다 커피 한잔 올려놓는다. 날아드는 커피 향속으로 하나 둘 생각이 쌓인다. 잠시 멍하니 있다. 엉덩이 들어 두어 발짝 옮겨 놓으니 창밖은 딴 세상이다. 순간 속의 무궁을 꿈꿔 본다. 눈부신 햇살이 버블버블 거품처럼 버글거린다. 창 밑으로 눈을 내리니 어느새 피워 올린 노란 수선화, 분홍 빛 꽃 잔디 웃음이 환하다. 봄 햇살 널린 하늘 아래 비로소 제 모습을 드러내는 것들이 참 많다. 그저 바쁘다는 핑계로 관심 주지 못하고 지나쳤을 뿐이다.

손바닥만한 우리 집 마당에도 아주 작고 연약한 식물들이 숨어서 살고 있다. 지난 주일에 큰 맘 먹고 쭈그리고 앉으니 그동안 보이지 않던 것들이 눈으로 들어왔다. 바스러진 잔디 사이로 보랏빛 제비꽃, 노란 민들레, 향 좋은 냉이가 방실방실 거린다. 어두운 눈에는 잘 보이지 않을 정도로 왜소한 꽃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와르르 달려든다. 자세히 보니 그 생김새와 빛깔이 아주 신비로울 정도로 절묘하기 그지없다. 한참동안을 그들 재롱에 빠져 있노라니 나태주 시인의 <풀꽃> 이 떠올랐다.‘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사람 사는 것도 별반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조금만 시간을 두고 자세히 봐주면 너도 나도 우리도 모두 예쁘고 사랑스러운 사람들이다. 요즘 학교에서 정말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아이들 생활지도도 그렇다. 평소 눈에 띄지 않는 아이들. 그늘지고 풀이 죽어 있는 아이들을 눈 여겨 보면, 보이지 않던 아픈 데가 보이기 시작하고 한없이 안쓰러워진다. 오래오래 지켜보면 자연스레 따뜻해지고 사랑스러워진다. 그러다보면 버겁고 어렵게만 느껴지던 문제들이 어느 순간 술술 풀어지게 된다.

촉촉이 내린 봄비 그치고 하늬바람 볼을 간지럽힌다. 이제는 거침없이 봄이 쏟아져 내린다. 청사 앞마당 하얀 목련은 이미 환한 꽃등 켜고 눈 빠지게 그리운 님을 기다리고 있다. 봄꽃들도 언덕을 넘어 빠르게 올라오고 있다. 개나리, 진달래는 꽃망울을 터뜨렸고, 머잖아 복숭아꽃 살구꽃, 라일락, 사향장미들이 연달아 피어나 천지사방이 꽃밭이 될 것이다. 너도 거리도 없이 내 마음에 와 닿아 아직 터지지 않은 꽃망울 하나 무량하게 피워 올렸다. 설레는 내 마음은 아랫목 고구마 싹처럼 웃자라 있다.

살아 있다는 것 그 자체만으로도 너무 감사하고 행복한 봄날이다. 이런 봄을 오십 번 이상 누려온 것은 적은 축복이 아닐 것이다. 더구나 오십이 넘은 사람에게도 봄은 똑같이 와준다는 것이 참으로 다행스럽고 행복한 일이다. 호수는 물론 산천에 봄빛이 가득하다. 흐르고 머무니 사람이라 생각한다. 내 영혼도 그렇다. 흐르면서 머물고 머물면서 흐르니 내 삶은 아직도 분별없이 현재 진행형이다. 그래서 이 봄날이 날마다 고통스럽고 날마다 황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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