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변 사람들에게“점점 젊어지네요.”라는 말을 듣기 시작하면 벌써 나이 먹었다는 증거라고 한다. 그러고 보니 부쩍 그런 소리를 듣고 있다. 이제 어지간히 나이를 먹은 게다. 마빈 토카이어의 <탈무드 잠언집>에 보면‘좀 더 나이를 먹으면 화장실에서 나올 때 바지 지퍼를 올리는 것도 잊어버린다. 더 늙으면 바지 지퍼 여는 것을 잊게 된다’는 말이 있다. 이런 얘길 들으면 그리 될까봐 끔직해진다. 나이 먹어도 그렇게는 되지 말아야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여고시절이나 교직생활을 하면서 지퍼를 올리지 않은 남자 선생님을 종종 목격한 적이 있다. 말씀드려야 하나, 말아야 하나 그런 고민도 했었다. 나이 들면 어쩔 수 없는 것들이 많아진 다. 예전에 그렇게도 맘에 들지 않던 친정 엄마 행동들을 나이 들면서 그대로 따라가는 내 자신을 보게 된다. 나도 모르게 잔소리는 늘고, 서운함이 생기고, 그 서운함은 노여움이 되고, 소신은 아집으로 변해 버린다.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은 겉모습만 변하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있는 속사람도 바뀌어 가야 하는 것이다. 나이에 걸 맞는 생각과 행동을 할 수 있어야‘~ 답다’란 소리를 들을 수 있다.
<논어> 자한 편에서‘공자는 4가지가 완전히 없었다(子絶四)’고 했다. 4가지란 의(意), 필(必), 고(固), 아(我)다. 여기서 의는 근거 없는 억측이요, 필은 무리하게 관철시키려는 자세요, 고는 융통성 없는 완고함, 아는 오직 나 만이라는 집착으로 풀이된다. 이 네 가지가 없어야 이른바 성인이라 한다. 범인으로서 이를 끊는 일이 또 얼마나 어려운지는 말할 것도 없다. 성인의 경지까지는 감히 바라보지도 못한다. 그렇지만 새해에는 이 네 가지 중 하나라도 없애는 일을 실천해 보고자 한다.
100세 시대다. 대부분의 모든 사람들은 확실한 계획을 잃어버리고 평생을 살아온다. 그리고 죽을 때가 되어서야 했어야 할 일들을 뒤늦게 후회하곤 한다. 인생은 다시 돌아갈 수 없다. 그래서 젊은 시절에 하고 싶은 일, 해야 할 일들에 대한 계획을 잘 세워서 비록 힘들고 어려워도 그 계획을 계속 가지고 살아야만 한다. 몇 년 전부터 유행한 건배사 중에‘껄껄껄’이 있다. 몇 개의 서로 다른 풀이가 전해지지만‘좀 더 사랑할 걸, 좀 더 즐길 걸, 좀 더 베풀 걸’이 으뜸이다. 여기다 하나 더 추가하자면‘참을 걸’이다.‘참으세, 베푸세, 즐기세’를 엮어 ‘인생은 껄껄껄, 다함께‘쎄쎄쎄’라고 외치기도 한다.
나이가 들면서 아까워도 버려야 할 것들이 많아진다. 그런데 그게 쉽지가 않다. 남과 비교하는 일, 자신의 기준으로 남을 판단하고 평가하여 남에게 상처 주는 말, 책임지지 못할 허풍이나 헛된 약속은 버려야 한다. 그리고 무모한 도전 뿐 아니라 해보지도 않고 물러서 버리는 비굴함도 함께 버려야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는 버려야만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꾸미지 않아도 존재의 향기로 나이 듦의 품위가 느껴지는 그런 삶을 살고 싶다. 죽기 전에 좀 더 열심히 일할 걸 하며 후회하는 사람은 없다고 한다. 더 즐기고 사랑하지 못한 게 안타까울 뿐이지. 한 살이라도 더 먹기 전에 진정 사랑하는 법, 베푸는 법, 즐기는 법을 배워야만 한다. 어쩌면 하루 빨리 버릴 것은 버리고 배울 것은 배우는 게 청춘의 시간을 연장하는 길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