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서천 서면중학교 교장 신경희

 
      살면서 누군가를 오해할 때도 있고, 또 누군가로부터 오해를 받은 적이 있을 것이다. 작건, 크건 오해는 관계형성에서 무서운 게 사실이다. 때로는 오해가 사람을 송두리째 삼킬 수도 있기 때문이다.

가장 가깝다고 하는 가족 간에도 오해를 사서 파탄에까지 이르는 경우를 보게 된다. 친구사이나 직장에서도 그렇다. 오해가 잘 풀려 이해되지 않으면 억측을 낳게 되고 더 큰 오해로 곡해되어 감당할 수 없게 되기도 한다.

최근에 뜻하지 않은 일로 오해를 받을 수 있는 상황이 전개돼 마음이 무겁고 답답했다. 어떤 일을 함에 있어 여러 가지 도움을 주고 애를 써 준 데 대한 고마움이 또 다른 과정을 거치게 되면서 그렇게 돼 버린 것이다.

처음엔 어처구니가 없고 황당했다. 버선목이라야 속 시원히 뒤집어 보일 수나 있다지. 내 입장에서만의 상황 설명과 그럼으로 인해 불쾌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전하다 보니 사실 더 좋지 않은 결과가 초래되었다. 역지사지(易地思之) 해보면 상대편도 답답하기는 매 한가지였을 것 같다.

그래서 지금도 미안하다. 관계에 있어 오해가 더 큰 오해를 낳지 않고 이해될 수 있게 풀어가는 지혜가 참으로 필요하고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하늘의 뜻을 안다는 지천명의 나이를 넘겼건만 때때로 나는 아직도 멀었다는 생각에 자꾸만 작아지게 된다.

흔히 ‘오해 마이너스 삼해면 이해다.’라고 우스개 소리를 하지만 사람과 사람사이 관계가 어디 그렇게 수학적으로 깔끔하게 정리될 수 있는 거던가. 나름대로 열정을 다해 겁 없이 생활하다 가끔 오해를 받은 적이 있다. 그 때마다 속상하기도 하고 힘들었던 기억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한 쪽에서만 바라보기에 생긴 오해들이 서로 입장 바꿔 생각하고, 또 생각하다 보면 ‘그럴 수도 있지’ 하는 마음으로 분명 이해가 되었을 텐데 말이다. 오해와 편견은 삶을 힘들게 하지만 오해와 편견에 무너지지 않고 그 너머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안목을 기르는 게 무엇보다 중요한 것 같다. 그러한 눈이 생기고 슬기롭게 풀어가다 보면 새로운 지평이 열리고 보다 강단 있는 힘이 생겨날 것이기 때문이다.

학교에서도 마찬가지다. 관리자와 교사, 교사와 학생, 교사와 학부모 등 다양한 관계에서 사소한 것으로 오해를 사기도 하고, 그러한 오해가 본의 아니게 눈덩이처럼 커져 아주 어려운 상황으로 달려갈 수도 있다.

물론 처음부터 그런 상황이 벌어지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여야겠지만, 오해와 이해사이를 좁히는 슬기로운 노력이 참으로 필요하다. 학교에서는 아이들에 대한 무한한 이해가 필요할 때가 많다. 누구든지 설명할 수 없는 나름대로의 사정이 있을 수 있다.

그러니 아이들을 눈에 나타나는 모습만으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 이해하려고 들면 모든 것이 이해되고 덮어지지만, 오해하기로 작정하면 모든 것이 다 마음 불편한 것이 된다. 오해는 끝없이 불행하게 만들지만 이해는 삶을 풍요롭고 행복하게 한다.

교직이 천직(天職)이든 천직(賤職)이 되고 있든, 선생님을 믿고 교문을 들어서는 학생들의 맑은 눈망울을 보면서 오해보다는 이해를, 절망보다는 희망과 꿈의 씨앗을 뿌려나가야 하는 곳이 바로 학교다.
 
교육이 흔들려 다소 어지럽지만 오히려 좀 더 의연한 큰 걸음으로 저 3월의 들녘을 지나 불어오는 봄바람처럼 믿음과 사랑이 넘치는 눈으로 아이들의 마음을 만져 주자. 지금은 오해와 냉소가 아니라 이해하고 북돋아 주는 따뜻한 교실, 아이들 하나하나가 빛나는 아름답고 행복한 학교 만들기에 온힘을 기울여 나갈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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