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서천군 서면중학교 교장 신경희

 
10여 년 전에 친정 집 옆에 작은 집을 지었다. 직장 생활하는 사람이라서 단독주택 생활이 그리 쉽지마는 않았다. 단독 주택에 살다 보면 철철이 해야 할 일들이 늘 쌓여있기 마련이다.

그래도 땅에서 올라오는 기운을 듬뿍 받을 수 있어 좋고, 문만 열고 나가면 흙을 밟으며 누릴 수 있는 아기자기하고 쏠쏠한 재미가 있다.

우리 집은 좁은 대지의 한가운데에 들어앉는 바람에 손바닥만한 잔디밭이 그나마 앞뒤로 나뉘어져 있다. 이사한 다음 해인가 친정아버님을 잘 아는 분이 소나무 두 그루를 선물해 주었다.

그다지 폼이 나는 소나무는 아니었지만 길가 잔디밭에 심었는데, 말없이 신통하게도 잘 자라주었다. 그런데 사오년이 지나자 가지와 잎이 무성해지면서 더부성 해지고 눈앞을 가려 답답하게 느껴졌다.

그러던 차 5년 전인가 추석 연휴에 바느질용 가위를 찾아 무작정 전지를 시작했다. 어디서 배운 바 없었지만 그동안 눈여겨보았던 소나무들의 모습을 떠 올리며 가위질을 해댔다.

두 그루 밖에 안 되는 데도 시간이 꽤나 걸렸다. 다른 일은 오래하면 다소 지겹기도 하고 한데, 처음 하는 소나무 전지는 나름의 눈으로 모양을 잡아가며 하는 거라서인지 손가락에 물집이 잡히는 줄도 모르게 몰두했고 그만한 재미도 있었다.

잎들을 가지 끝으로 모아 몽글몽글 푸들강아지 모습처럼 만들어 놓고 보니 전체적으로는 허전해 보였지만 모양새는 그런대로 괜찮았다. 돌 틈 사이에 자리한 철쭉들을 꽃이 다 지기 전에 가끔씩 잘라 준적은 있어도 소나무는 처음이었다.

나무들을 전지하는 데 있어서도 식물계에는 ‘황금 각’ 및 ‘황금 비율’이라고 불리는 피보나찌 수치가 있다고 한다. 그렇게까지는 하지 못하더라도 전문가들에 의하면 전지를 할 때는 먼저 나무 전체를 보고 유별나게 뻗은 가지를 잘라 준다.

그리고 그 다음으로 사지 즉 죽은 가지를 전지한다. 그런 다음에는 속지 즉, 안으로 들어간 가지를 전지하고, 서로 닿아 있는 가지를 전지하면 된다고 조언한다. 또한 소나무는 전지를 매년 해 주지 않아도 된다고 한다. 틀을 잡아 2년에 한번 씩 정도 해주면 된다고 해서 그 이후로는 틀 따라 모양 잡은 데서 삐죽거리는 것들만 조금씩 잘라 내고 있다.

거기다가 내 머리도 제대로 못 만지는 사람이 단지 소나무 두 그루를 이리저리 잘라 낸 경험만으로 조카들의 머리까지도 다듬어 주고 있다. 어느 날인가 어린 여자애 조카들 머리를 재미삼아 잘라 주게 되었는데, 이젠 두 달에 한번은 자매가 집으로 찾아와 머리를 대놓고 들이대는 바람에 팔자에 없는 미용사 역할까지 하고 있다.

가위질을 하다 보면 처음에 두려워하던 마음이 사라지고 서서히 대범해지면서 때로는 마치 전문가라도 되는 냥 이런 저런 폼까지 잡아가며 다양한 시도를 하게 된다. 해보지 않은 사람들은 그걸 잘 이해를 하지 못한다. 수고스러운 듯 하지만 그 과정에서 얻어지는 마음 정돈은 물론이며 때로는 욕심으로 마구 웃자라는 마음까지 잘라내면서 느끼는 힐링의 기쁨은 무엇으로 설명할 길이 없다. 힐링은 결코 남이 해주는 게 아니다.

스스로 치유하는 것이다. 물론 치유의 방법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 올 한해도 살아가면서 누구나 크고 작은 상처를 입을 것이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도 남을 탓하지 말고 자신 스스로가 나름의 방법으로 치유해야 할 것이다.

학교에 있다 보면 사춘기 절정에 이른 학생들의 사자 같은 머리며 성장통으로 힘들어 하거나 막무가내 식으로 나가는 것을 흔히 볼 수가 있다. 그럴 때면 그들의 머리카락은 물론이고, 울컥 불컥 무대포로 솟구쳐 오르는 마음까지도 나무처럼 전지해 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곤 했었다.

우리 집 소나무처럼 억지로라도 틀을 잡아 놓고 때때로 삐쳐 올라오는 가지들을 잘라내고, 그들의 아픈 상처도 다독거리며 마음을 정돈시켜 가다듬어 줄 수 있으면 참 좋겠다.

살다보면 버리고 잘라내야 할 것들이 많다. 버리지 못하고 집착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것도 없는 것 같다. 이제 구정명절도 지나고 따뜻한 봄비가 내리기 시작한다는 우수(雨水)가 지났다. 새봄맞이와 함께 우리 집 소나무를 다시 전지해 줘야할 때가 됐다.

전지를 하면서 더불어 그동안 쓸데없이 웃자라 버린 욕심과 아집까지 깔끔하게 잘라내 버리고 단정하고 새로운 마음으로 새로운 학년도를 시작해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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