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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을 만나고 부딪치는 일상 속에서 나는 가끔 ‘미늘’을 생각할 때가 있다. 좋든 싫든 한번 이루어진 관계에는 사회적 연계성이든, 그게 뭐든 쉽게 끊어낼 수가 없다. 거기엔 내 성격상의 문제도 얼추 가미되어 있다. 한 순간 훌훌 털어 버리고 싶거나, 원하지 않는 관계인데도 끈질긴 인연의 고리에 단단히 얽매어 있기도 하다. 좋은 사람과의 관계는 더 말할 나
2013.11.28 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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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포털 사이트나 주류 신문 뉴스, 방송을 접할 때마다 무서운 초딩이니 중딩이니 하는 단어들이 곧잘 등장하곤 한다. 학교, 학생, 청소년에 관한 뉴스치고 충격적이고 뒷맛 씁쓸한 것들이 대다수다. 올해도 그 어느 해 못지않게 구석구석에서 좋은 뉴스보다 좋지 않은 뉴스들을 더 많이 접한 것 같다. 우리 사회가 충격적인 뉴스에 더 방점을 두다 보니 오히려 수많
2013.11.20 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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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이 깊어갈수록 햇빛이 다르고 물빛이 다르고 바람이 다르다. 몇일 전 소리 없이 다녀간 가을비 덕분일까. 한층 선명해진 풍경이 황홀하기 그지없다. 요즘 그 향연을 누리기엔 출퇴근길이 너무 짧아 맥없이 해안도로나 금강 변으로 돌아가기 일쑤이다. 가을이면 앓는 병이다. 가을에는 꼭 그렇다. 수년 전 대전으로 출퇴근하던 시절엔 너무나 힘들어서 경치고 뭐고 한참
2013.11.11 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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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퇴근하여 현관문을 열면 조용한 공간에서 맨 먼저 달려 나와 반겨주는 것이 있다. 잘 익은 탱자의 노란 향기다. 친정어머님이 동네 어귀에 아직도 버티고 있는 탱자 울타리 밑에서 주워 온 것들. 둥글둥글 탱자만의 끈적끈적한 피부결 탓에 먼지가 달라붙어 꼬질꼬질해진 몸을 일일이 수세미로 깨끗이 닦아서 한 바구니 가져다 놓으신 이후부터다. 팔순에 가까운 어머
2013.10.29 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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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에 흐르지 않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강물이 흐르고 바람이 흐르고 구름도 흐른다. 시간이 흐르고 공간도 흐른다. 봄이 흐르고 여름이 흐르고 가을이 흐른다. 소리 내어 부르지 않아도 이른 새벽 강가 갈대가 바람을 불러오고 알록달록 고운 빛, 은빛 억새꽃, 시간이 그려놓은 가을 수채화 속에 그리움 한 자락도 걸려 있다. 한해가 이렇게 스멀스멀 잘도 흐른
2013.10.17 2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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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출장길 기차 안에서 책을 단숨에 읽어 낸 적이 있다. 고전이지만 쉽고 간결하게 정리된 이유에서였을 게다. 그리고는 책장 한쪽으로 밀쳐 두었었다. 그러다 어느 휴일 날에 여유를 부리며 한 장 한 장 음미하며 다시 읽다 보니 깊이와 맛이 새롭게 다가왔다. 그 후, 구기방심(求己放心)할 수 있는 벗으로 곁에 두고 있다. 지난 주말에 다시 펴
2013.10.07 0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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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추석연휴는 다른 어느 때보다도 길었다. 날씨도 여름 햇살에 간간히 매미 소리까지 들리는 여름과 가을이 공존했다.그런 가운데서도 세상은 빛 고운 가을 색을 담아내고 있어 가을정취를 물씬 느낄 수 있었다. 연휴 마지막 날, 오후에 잠깐 짬을 내어 고창 선운사에 다녀왔다. 매년 이맘 때 쯤 이면 어김없이 하는 연례행사다. 일명 상사화라 불리는 꽃무릇으로 선
2013.09.26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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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쟁이와 마술사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심리 트릭의 고수’라고 어느 책에서 읽었던 기억이 난다.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 사람의 속성을 이용하는 능력이 뛰어난 사람들이다. 눈앞에서 미녀를 사라지게 하거나 관객의 호주머니에서 토끼를 꺼내는 신기한 마술은 대부분 관객의 주의를 엉뚱한 곳으로 돌려 만들어낸 ‘심리적 맹점’을 틈탄
2013.09.16 1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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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는 9월로 접어들면서 본격적으로 2학기가 시작되었다. 유례없던 기나 긴 무더위로 힘들었던 여름이었다. 절대 오지 않을 것만 같던 가을은 어김없이 우리 곁으로 다가왔다. 한층 투명해진 햇살과 코스모스 빛깔 입은 부드러운 바람이 옷깃을 스친다. 밤이면 풀벌레소리 맑게 귓가에 울리고, 서늘한 별빛이 한 아름 쏟아져 내리는 아름다운 계절이다. 새삼 자연의 변화
2013.09.04 1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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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은주 높은 날도 아랑곳하지 않고 하늘을 이고 서서 노랗게 함박웃음을 웃던 호박꽃을 생각하면 뭔지 모를 푸근함이 느껴진다. 호박에 대한 우리들의 일반적인 느낌은 사실 별로였던 것 같다. 어릴 때 불렀던 동요만 해도 그렇다. ‘호박 같은 내 얼굴 미웁기도 하지요’ 그렇게 호박하면 왠지 무식해 보이기도 하고, 아름답지 못해 푸대접 받는다는 걸 떠 올리게 된다.
2013.08.30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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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학교 교사동은 외벽공사 중이다. 방학동안 어느 정도 마무리되길 기대했다. 그런데 오히려 개학을 하고 나니 발동이 걸려 지금에서야 한창 열을 내고 있다. 물론 공사를 하다보면 뜻하지 못한 사정들이 달라붙기 마련이다. 10여년 전에 손바닥 만한 집을 지을 때도 그랬다.예상 기일대로 되는 것들은 별로 없었다. 그래서 알게 모르게 애도 많이 태웠다.개학을 며
2013.08.21 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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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길을 걸을 때면 새로 반 배정을 받은 담임교사처럼 출석을 부르듯 꽃과 나무와 풀들의 이름들을 소리 내어 부르는 습성이 있다. 소나무, 대나무, 봉숭아, 해바라기, 맨드라미, 채송화, 노루귀, 쇠별꽃, 쇠비름... 그러면 그 아이들도 대답을 한다. 꽃 이름, 풀이름들을 떠 올리다 보면 저 여기 있어요. 하고 손을 추켜올리듯 자신의 존재를 드러낸다. 이름
2013.08.14 0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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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일암에 다녀왔다. 올 석가탄신일 연휴에는 특별한 계획을 잡지 않고, 집안 밖 정리나 하면서 보내기로 마음먹었었다. 하루쯤은 가까운 산에서 고사리를 꺾으며 등산까지 해보리라는 야무진 속셈도 있었다. 화단을 휘두른 회양목 새순들이 수양버들처럼 흘러내려 어수선하던 부처님 오신 날 아침. 회양목들을 나란히 줄 맞춰 다듬고 나서야 늦은 아침 식사를 했다. 그런데
2013.05.20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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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평생을 살아가면서 수없이 많은 약속을 한다. 이들 약속에는 무심결에 스쳐지나가는 말로 하는 약속도 있고 반드시 지키기 위해 하는 약속도 있다. 어떠한 약속을 하든 반드시 약속에는 상대가 있다. 그 상대가 자신일 수도 있고 타인일 수도 있다. 사회라는 구성체에는 질서라는 규범이 있다. 규범도 명문화 된 것이 있는가 하면 구성원간의 약속인 윤리와 도덕이
2013.05.09 0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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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잠꾸러기 막둥이 아들은 언제나 아침이 바쁘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스스로 빨리 일어나 서둘러 댔다. 무슨 일일까? 숨겨두었던 카네이션과 하얀 봉투를 들고 윗집에 사시는 외할아버지 댁으로 내달렸다. 중학생활 내내 공부는 딴전 피우고 이유 없이 짜증과 불만투성이 던 아이였다. 누구나 다 겪는다는 사춘기가 길어도 너무 길었다. 진짜 속마음은 그렇지 않다는 그
2013.05.08 1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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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과 들 그 허문 곳을 풀과 꽃들이 제 각각의 색실로 곱게 꾸미던 4월이 가고 어느새 5월이다. 요즘은 기후 변화로 봄 인가 싶으면 어느 틈엔가 여름이 지배한다. 짧은 봄날이 무단횡단으로 스쳐가는 바람 같아 아쉽다. 이제는 잎 나오고 피는 꽃들 차례다. 꽃 잔치 가쁜 숨결의 마지막 날숨처럼 슬며시 모란도 올라오고 있다. 달고 진한 찔레꽃, 아카시아꽃, 연보
2013.05.02 1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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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우(穀雨) 지나고 봄비가 유난히 잦다. 엊그제 내린 비로 활활 타오르던 꽃들이 숨을 거두고 있다. 봄은 아직 내 몸속을 빠져 나가지 못했는데 꽃들이 지고 있다. 때가 되어 꽃 피는 힘, 때가 되어 꽃 지는 걸 그 어느 누구라서 말릴 수 있을까마는 벚꽃, 살구꽃, 봄이 지는 소리 그것은 차라리 아픔이다. 계절 탓인지 요즘 자꾸 우울하다. 우울하니 자연히 얼
2013.04.24 1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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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로 나누어진 우리 집 좁은 마당에 잡초가 잔디보다 먼저 자리를 잡았다. 지난 주말 큰 맘 먹고 쭈그리고 앉아 졸망졸망한 잡초를 뽑았다. 어느새 뿌리가 깊어 호미를 넣어야 뽑혔다. 그 춥고 긴 겨울을 이기고 올라온 수수하면서도 자세히 보면 나름 기품까지 갖추고 있는 풀꽃들을 뽑아내기가 좀 미안스럽긴 했다. 근데 돌아서면 빠진 것이 있고, 다 뽑았다 싶으면
2013.04.17 1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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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비탈 경사진 곳마다 봄나물들이 제법 자라나 웅성웅성 수다가 한창이다. 세상천지는 하양, 노랑, 분홍 꽃물결로 넘실댄다. 바야흐로 봄바람 속에 연분 난 꽃들처럼 색 나게 사랑하고 싶은 계절이다. 황홀하게 자라고 있는 4월. 요즘은 이대로 감정의 방에만 머물러 있고 싶을 때가 많다. 하지만 오늘도 세상 속으로 블랙홀처럼 빨려 들어간다. 도대체 산다는 것은 무
2013.04.10 14: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