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교육청 장학관 신경희

▲ 충남교육청 장학관 신경희
2016년 원숭이해가 저물고 있다. 언제나 그래왔듯이 올해도 다사다난했다. 어김없이 서해안고속도로를 달렸고, 타인의 평가에 매달리느라 일에 쫓겼다. 좋은 사람들과의 만남이나 마음 재테크는 엄두도 내질 못했다. 돌아보면 특별하다 할 것은 없다. 열두 달을 살아오면서 가족 모두 크게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여기까지 온 것에 그저 고맙고 감사하다. 그나마 때로 가슴 뻐근함을 안겨준 것은 글줄이나 쓴다면서 시간을 토닥거릴 때였던 것 같다. 사소한 일도 대단한 일이 됐다. 작은 사건도 전설이 되고, 어려운 일도 아름다움으로 승화되는 시간이었다.

근자에 제주 출장이 몇 번 있었다. 언제나 1박 2일이라서 오가는 시간, 공항에서 기다리는 시간을 생각하면 별거 아니다. 하지만 사무실이 아닌 곳으로 떠난다는 사실만으로도 생명수를 얻듯 시원하고 가벼워졌다. 살아있다는 것이 얼마나 눈물 나는 일인지를 새삼 느끼게 만들어 주기도 했다. 최근, 제주 출장 때는 비바람이 몰아쳤고, 산 중턱엔 하얀 눈이 쌓여 있었다. 밤새 울던 바람, 거센 파도, 잠 못 이뤘던 그 밤이 자주 생각난다.

깊고 푸른 밤. 밤새 뒤척이며 <고슴도치 사랑>을 떠올렸었다. ‘추운 겨울 날, 고슴도치 두 마리가 서로 사랑했네. 추위에 떠는 상대를 보다 못해 자신의 온기만이라도 전해 주려던 그들은 알았네. 안고 싶어도 안지 못했던, 그들은 멀지도 않고 자신들의 몸에 난 가시에 다치지도 않을 적당한 거리에 함께 서 있었네. 비록 자신의 온기를 다 줄 수 없었어도 그들은 서로 행복했네. 행복할 수 있었네.’ 사람과의 관계에서 적당한 거리를 둔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수록 더 집착하고, 간섭하게 되어 때로는 서로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치유될 수 없는 상처를 남기기도 한다는 것을.

허허로운 가슴에 운명처럼 박혀 빼낼 수도, 더 다가갈 수도 없는 섬이 있다. 산다는 건 그런 섬 하나 가슴 속에 품고 가는 것일까. 지난여름, 우리 동네 공원 한모룽이에 능소화 흐드러지게 피었었는데. 어느 날인가 눈물 뚝뚝 흘리는 주홍꽃잎 받아주던 늙수그레한 의자 하나를 보았다. 그 모습, 좀 애처롭기는 했지만, 보기에 차암 좋았다. 부질없을지라도 그런 사람 하나쯤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12월이면, 차마 흘려보내지 못하고 마음속에 담아 두었던 것들, 고여 있고 묶여있고 응어리졌던 것들이 생각난다. 제 역할에 충실한 시계바늘을 보면서 “시계바늘아, 한번쯤 멈춰 보는 건, 되돌아보는 건, 어떨까.” 실없이 말을 걸어보기도 한다. 창밖으로 보이는 하늘은 아직 할 말이 많이 남아 있는 사람처럼 시큰둥한 얼굴이다. 한 해를 보내야 하는 마음이 결코 가볍지만은 않은 모양이다.

흔히 12월을 매듭달이라고 한다. 이름에 걸맞게 잠시 멈춰 숨을 고르며 올 한 해를 매듭짓는 여유를 가져봐야겠다. 쓸데없이 이루지 못한 큰일을 끌어안고 아쉬움의 마침표를 찍기보다는, 작지만 소중한 성취들을 하나하나 챙기며 미소 지으며 보내는 것은 어떨는지. 서른셋에 요절한 푸딘대학 위지안 교수는 <오늘 내가 살아갈 이유>에서 ‘뭔가를 이루기 위해 전속력으로 달리는 것보다, 곁에 있는 이의 손을 한 번 더 잡아 보는 것이 훨씬 값진 일이다’, ‘운명은 내 맘대로 바꿀 수 없지만, 운명에 대한 나의 자세는 얼마든지 바꿀 수 있다’ 라 했다. 연말연시를 기해 한번 쯤 새겨볼 일이다. 지금은, 한 매듭을 지으며 작지만 소중한 일들에 귀를 기울이며 기본과 초심을 챙겨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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