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교육청 장학관 신경희
가을이 오면, 절로 고운 시선을 살려내고 싶어진다. 무심함 때문에 잃어버린 일상의 아름다움을 되찾고 싶어서일 거야. 아무것도 아닌 일에 주목하는 힘. 그것이 진짜 큰 힘이다. 주변의 것을 아름답게 볼 수 있는 시선. 나이 듦이라는 것은 늘 거기 있었지만 미처 눈여겨보지 않았던 것들에 시선을 주어 즐거운 것들을 점점 더 많이 만들어가는 것이 아닐까.
가을이 오면, 다독이 아니라 한 권의 책이라도 천천히 깊이 읽어야겠다. 천천히 읽지 않고서는 책의 봉인을 해제할 수 없다고 믿기 때문이다. 읽고 있는 글에 내 감정을 들이 밀어 보기도 하고, 가끔은 읽기를 멈추고, 한 줄의 의미를 되새겨보며 깊이 빠져 있고 싶다. 그런 후에야 내 안으로 들어온 지식이 지혜가 될 테니까. 독서가 중요한 이유 또한, 새로운 시선이 들어오기 때문이다. 시선의 변화가 제일 중요하다. 그 변화가 나를 풍요롭게 만들어 준다.
가을이 오면, 시(詩)를 많이 만나고 싶다. 세상의 작은 것, 사소한 것들에 따뜻한 눈빛을 던질 줄 아는 시인들의 시선을 함께 나누고 싶어서다. 무엇보다 한 줄의 문장이 주는 위로와 쾌감을 아니까. <이도저도 마땅치 않은 저녁. 철 이른 낙엽 하나 슬며시 곁에 내린다. 그냥 있어볼 길밖에 없는 내 곁에 저도 말없이 그냥 있는다. 고맙다. 실은 이런 것이 고마운 일이다> 김사인 시인의‘조용한 일’전문이다. 아무것도 아닌 낙엽 하나에서 고단한 삶 위로받고, 고맙다는 인사를 전하는 시선이 부럽기만 하다. 나이가 드니 심술이 나는 것도 아닌데 심술이 난다. 겁이 나는 것도 아닌데 겁이 난다. 비겁하게 아 숫자가 내 기를 수시로 시든 풀처럼 팍 꺾어 놓는다. 그럴 때마다 시를 천천히 읽으면서 위로를 받는다.
<가을이 오면, 눈부신 아침햇살에 비친 그대의 미소가 아름다워요. 눈을 감으면 싱그런 바람 가득한 그대의 맑은 숨결이 향기로 와요. 길을 걸으면 불러보던 그 옛 노래는 아직도 내 마음을 설레게 하네. 하늘을 보면 님의 부드런 고운 미소 가득한 저 하늘에 가을이 오면. 가을이 오면 호숫가 물결 잔잔한 그대의 슬픈 미소가 아름다워요. 눈을 감으면 지나온 날에 그리운 그대의 맑은 사랑이 향기로워요. 노래 부르면 떠나온 날에 그 추억이 아직도 내 마음을 슬프게 하네.> 뭐냐 구요? 이문세의‘가을이 오면’ 노랫말입니다. 참 좋지요. 살아간다는 것은 가을을 한 번 더 본다는 것이지요. 천천히 와도 옵니다. 가을은 그렇게 우리에게 올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