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교육청 장학관 신경희

▲ 충남교육청 장학관 신경희
장마전선이 뒤로 주춤했다. 비는 내리지 않고 무더위가 끈적끈적하다. 이열치열 뜨거운 차 한 잔을 마시며 우연히 내게까지 건너온 수필집을 얼핏얼핏 읽는다. <산수국>은 젊은 나이에 안타깝게 세상을 떠난 수필가를 대신해 가족들이 펴낸 유고집이다. 내겐 산수국보다 수국이 낯익다. 우리 집 쪽 마당 귀퉁이에 기척 없이 앉아 있다가 어느 날부터 꽃을 피우고 색깔까지 바꿔가며 변신하는 여름 꽃이기 때문이다. 우리 집 수국은 지금 한창이다.

산수국이란 이름은 수필을 읽으면서 처음 알았다. 식물에는 나름 일가견이 있다고 자부께나 했었는데, 이런 불명예스러울 때가 있나. 검색창을 두드려 보니 이름만 몰랐지 정원이나 공원에서 만났던 여름 꽃의 대표 주자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교직초임시절 인근에 있던 광릉수목원에서 보았던 그 꽃이다. 빗물 머금은 채 싱싱하고 오묘하게 아름다웠던 모습을 지금도 어렴풋이 기억할 수 있다.

산수국은 산에서 자라고 물을 좋아한대서 이름 지워졌다 한다. 가장자리에 달린 꽃은 헛꽃이라 하여 화려한 꽃잎으로 곤충을 유인하는 역할을 하며 수술과 암술은 퇴화하여 흔적만 남아있다. 가운데 있는 꽃은 참꽃이라 하며 가장자리에 있는 꽃이 유인해 온 벌과 나비들의 도움으로 꽃가루받이를 하므로 수술과 암술만 잘 발달 되어 있다. 꽃도 기능도 다르다. 자잘한 꽃 백 송이를 달고 있어도 하찮은 곤충조차 거들떠보지 않자 종족 번식을 위해 잘디 잔 꽃송이 가장자리에 아름답고 화려한 헛꽃을 피워 벌과 나비를 불러들인다니 그 것 참 신비롭기 그지없다.

헛꽃은 참꽃이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도운 뒤에 사그러들며 자신의 아름다움을 감춘다니. 그래서였을까 작가는‘헛꽃의 헌신은 대가없이 주는 모성과 같은 사랑이다’라고 표현했다. 또한 최정신 시인은‘발측한 자태로 포장을 포장한 위장술로 섧다. 지나온 길 가짜 꽃잎은 누구에게 눈물겨움 한 자락 펼쳤을까’<헛꽃>의 시 구절이 아리기만 하다.

알면 애절하고 사랑할 수밖에 없는가 보다. 화원 앞을 지나는데 커다란 돌 화분에 산수국이 한가득 피어 있다. 가던 길 멈추고 바라보았다. 특이하고 특별하게 생긴 꽃이란 생각이 든다. 아주 작은 꽃들 중앙에 있고 바깥부위에 헛꽃이 있는데 헛꽃잎 4-5장이 모이는 곳에 또 꽃이 있다. 그 모습이 마치 작은 우주 같다. 한 나무에도 연두, 분홍, 보라 꽃잎 색깔이 다르다. 함초롬한 꽃잎에 물방울이 작은 열매들처럼 조랑조랑 매달려 있는 걸 보니 뭔지 모르게 꽃의 삶이 눈물겨워 보였다. 산수국을 생각하며 삶을 돌이켜 본다. 나는 누구에게 헛꽃 같은 사랑과 희생을 베풀어 본 적이 있는가. 또한 누구에게 그런 사랑을 받아 본적이 있었던지.

여름 꽃 산수국이 한창이다. 땡볕에 핀 개망초 꽃처럼 흔하진 않지만 눈여겨보면 의외로 쉽게 만날 수 있다. 알고 보면 수국처럼 연두색, 분홍색, 보라색으로 나중에는 쪽빛으로 변하는 참 신비로운 꽃이다. 꽃의 색이 변하는 걸 지켜보노라면 계절이 차츰 바뀌어 지나가겠지.‘변하기 쉬운 마음’이라는 꽃말처럼 내 마음도 더불어 빛깔을 바꾸며 이 끈적끈적한 무더위와 장마철을 힘겹게 보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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